2001 : namboohee

THE 3 rd Nam Boo Hee Solo Exhibition

NAM, BOO HEE | 2001. 12.12 - 12.18 | INSA GALLERY | SEOUL

At sunset, oil on canvas, 91 x 73 cm, 2001

자연성, 생명과 시적인 암시

남부희의 그림은 소재적으로 인물 등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개 풍경화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것도 갯벌과 바닷가에 접해 있는 화성 근교의 작업실 주변 풍경이 중심이 되고 있다. 갯벌과 바닷가 이외에도 군집을 이룬 해송과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나즈막한 인공적인 색채와 형상으로 자연과 대비되는 도로, 언덕에 난 사잇길, 그리고 마치 대지로부터 솟아난 듯한 농가의 낮은 지붕과 밭의 정경이 그 풍경을 특징짓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도심을 벗어난 근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가와 더불어 호흡한 나머지 마침내 작가의 일부가 돼버린 풍경들이다.

이렇듯이 작가는 흔한 소재가 내재한 ‘일상성’으로부터, 그리고 사실사철의 어김없는 변화에 기초한 우주의 섭리에 대해 자기를 속이는 법이 없는 ‘자연’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여기서 삶의 의미는 그 자체로 작가의 예술 혹은 회화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작가의 작업은 자연의 내재적 속성이랄 수 있는 일상성과 항상성에 주목하고 그 성과를 작업 또는 삶의 의미와 연결짓는 데에 기초하고 잇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삶이란 것이 ‘지금 여기’의 현장성에 기초한 것과 마찬가지로 삶의 의미 역시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피력하고 있다. 즉 삶의 의미란 자연의 성질을 관통하고 그것에 동화되는 것인 셈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연의 성질 곧 자연성이 자기를 드러내는 회화적인 방식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 방식이란 작가의 그림에서 보듯이 표면적으로는 재현적인 문법을 취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재현적인 문법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자연을 재현하는 회화의 방식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자연주의 또는 사실주의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연주의 또는 사실주의 회화에 있어서조차 회화가 자연으로부터 취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자연의 외관이 아닌 자연의 성질인 법이다. 결국 자연의 외관이란 작가가 자연의 성질에 이르기 위해 관통하는 표면인 셈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이르고자 하는, 그리고 회화적인 방법을 통해 번안하고자 하는 자연의 성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자연이 은폐하고 있는 특유의 ‘생명’ 또는 ‘시각적인 암시’이다. 한낱 이름없는 들풀로 하여금 삶 또는 존재의 충만으로 모여 삶을 경영하는 자연의 존재방식이 시적인 암시인 것이다. 생명도 그렇지만 특히 시적인 암시는 자연성에 대한 작가의 동화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시적인 암시란 자연의 한 성질인 만큼이나 작가가 자연으로부터 읽어낸, 자연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이며 느낌이며 인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성 곧 생명과 시적인 암시를 드러내기 위한 작가의 회화적 방법은 현장성의 강화화 현장성의 순간적인 포착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 현장성이란 자연의 외관이 아닌, 자연이 자기의 성질 곧 자연성을 드러내는 어떤 순간을 말한다. 자연의 성질이 압축되어 나타나는 어떤 순간인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어떤 분위기라 할만한 그것은 필연적으로 순간적이다. 즉 순간과 순간이 이어진 자연은 표면적인 항상성에 불구하고 실제로는 같은 순간, 같은 모습이란 단 한차례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순간적인 포착을 위해 작가는 생략법과 면적인 처리, 선묘와 드로잉, 그리고 속필에 의존하고 있다. 생략법이란 자연성 곧 자연의 본질을 드러내고 강조하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들을 생략하는 것이며, 면적인 처리 역시 세부를 생략함으로써 궁긍적으로는 자연의 본질의 강화하고 있다. 하편으로 면적인 처리는 사실상 선묘의 연장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첩되어진 선묘가 면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선묘가 스케치 풍의 비정형과 속필의 형식을 띄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작가의 작업을 특징짓는 주요한 점이기도 한데, 다름아닌 속필이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성 곧 자연이 내재한 생명과 시적인 암시를 포획하는 한 방법이다. 더욱이 자연을 내면화하여 되새김질 해내는 회화의 방법에 있어서 양식화되거나 틀화된 자연의 존재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이러한 비정형이야말로 그 자체가 매번 다른 순간들로 이어진 자연이 존재인 것이며, 생명이나 시적인 암시가 가능한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의 비정형에 동화한 작가의 회화적 방법이 생략법이요, 면적인 처리이며 속필인 것이다.

글: 고 충환(미술평론가)